산우회
자유인ㆍ문화인ㆍ평화인ㆍ자랑스런 경기고 75회입니다.
6월 6일 도봉산 오봉 후기 (사진도 올립니다.)
김재호 2007-06-08
2007년 6월 6일 오전 9시 40분 도봉산 포돌이 만남의광장 앞.
미리 산행 참석 여부에 대한 리플을 달지 못하여 전날(6월5일) 저녁에 올리고,
아침에 집결 장소에 20분 전에 도착하여 오고가는 사람들 구경하다가, 시간이
다 되도 나타나는 인간들이 없네. 그래서 번개 올린 하모 행장(?)에게 전화하니,
어라? 핸펀이 꺼져 있네. 어~~ 불안한 마음으로 다시 대진에게 콜.
시간이 1시간 연기되었데. 왜냐하면 참석자중 2명이 전날 늦게까지 음주를 즐겼
다더군. 할수없이 다시 1시간 동안 오가는 사람들 구경했지. 참 사람 많더군.
드디어 다(김재호, 인정록, 강영환, 정대진, 하승림과 아들내미) 모여 11시 조금
넘어서부터 오봉을 목표로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조성환은 일이 있어 못왔는데, 우이암쪽으로 등산하여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도봉산의 주봉은 자운봉(739.5m)으로 오봉(660m)은 그 서쪽에 있습니다.
도봉매표소를 지나 갈림길에서 좌측(도봉사방향)으로 접어들어...
등산한 코스를 좀 자세하게 쓰고 싶은데, 산행시 별로 지명에 신경을 안써 잘
모르겠군요. 다음에 등산할때는 메모장을 가지고 다녀야 겠어요.
아뭏든 ...->거북샘->칼바위능선->오봉으로 간 것 같아요.
등산중 강영환 훈련대장이 암벽등반의 시범을 보이다 손가락을 다치는 사고(?)
가 발생하여,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대일밴드 얻느라 여러번 물어보았습니다.
점심은 1시 30분경 각자 준비해 온 것과 막걸리 2병으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 후 등산중에 조성환은 만나지 못했는데, 우이암에서 식사시 막걸리 1병에
만사가 귀찮아 하산한다고 했습니다.
산행시 나눈 이야기 중 재미있었던 것을 적어봅니다.
연예인 A, B가 식사하러 가서
A : 야, 오늘은 더치 페이야. 너 뭐 먹을래?
B : 응, 나도 더치 페이로 시켜줘.
B가 다른 연예인 C에게 가서
B : 오늘 A와 식사 더치 페이로 했어.
C : 야, 너희는 맨날 더치 페이만 먹냐?
여기서, 더치 페이[Dutch pay] 라는 말의 뜻은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그 어원이 독일이라고 잘못 알고 사람도 많은 것 같아 아래에 올립니다.
자, 다음에 밑줄 쫙~~~ 돼지꼬리 땡땡~~
하산시 중간에서 조성환을 만나 내려오니 5시 30분경.
아니, 속리산 정기산행 체력 점검차 와서 너무 많이 걸은 거 아니야?
그 여파로 다음날(6월 7일) 마라톤 모임에 나가서 천천히 한 7Km 정도 뛰었습
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6월 8일 점심시간)도 다리가 뻐근합니다.
아뭏든 하산후 컵라면과 시원한 맥주 한잔씩하고 헤어졌습니다.
P.S : 엉덩이 노출 사진은 안 올립니다.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다면 당사자분
들께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연락주세요. 일주일후 삭제할 겁니다.
* 더치 페이[Dutch pay] : 비용(費用)을 각자 서로 부담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
'더치 트리트(Dutch treat)'에서 유래한 말이다. 더치(Dutch)란 '네덜란드의'
또는 '네덜란드 사람'을, '트리트(treat)'는 한턱내기 또는 대접을 뜻한다.
더치 트리트는 다른 사람에게 한턱을 내거나 대접하는 네덜란드인의 관습이었
다. 네덜란드는 아시아 지역에 대한 식민지 경영과 무역 등을 위해 1602년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세우고 영국과의 식민지 경쟁에 나섰다.
또한 17세기 후반 3차례에 걸친 영국-네덜란드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하자
네덜란드의 제해권(制海權)은 영국으로 넘어갔다.
이러한 가운데 영국인들의 일에 네덜란드인들이 간섭하게 되어 네덜란드와
영국 두 나라는 서로 맞서서 대응하는 갈등이 이어졌다.
이로써 영국인들은 네덜란드인(Dutchman)을 탓하기 시작하여 '더치(Dutch)'
라는 말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다. 영국인들은 '대접하다'라는 의미
의 '트리트' 대신 '지불하다'라는 뜻의 '페이(pay)'로 바꾸어 사용하였다.
따라서 '더치 페이'라는 말은 식사를 한 뒤 자기가 먹은 음식에 대한 비용을
각자 서로 나누어 부담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네덜란드인의 생활양식에서 비롯된 더치 페이는 세계적으로 생활화된 하나의
관습이 되었다.